스플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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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동부 아드리아 해 연안의 가느다란 곶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카슈텔라 만, 동쪽으로는 스플리트 해협의 더 깊은 바닷물이 경계를 이룹니다. 북쪽의 코자크(Kozjak)와 북동쪽의 모소르(Mosor)라는 두 개의 산줄기는 각각 779m와 1,339m 높이로 솟아 있어 내륙에서 도시로 접근하는 길을 감싸고 혹독한 날씨로부터 도시를 보호합니다. 반도 서쪽 끝에는 해발 178m 높이의 숲이 우거진 마르얀(Marjan) 언덕이 있습니다. 약 347헥타르에 달하는 숲이 우거진 경사면에는 산책로가 나 있고, 해안가, 구시가지의 붉은 기와 지붕, 그리고 멀리 달마티아 섬의 실루엣이 펼쳐지는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곳의 기후는 더운 여름 지중해성 기후에 속합니다. 여름은 덥고 대체로 건조하며, 가끔씩 불어오는 북풍인 부라(bura)의 돌풍이 아침을 예상보다 시원하게 만들어 줄 뿐입니다. 겨울은 온화합니다. 1월 평균 최저 기온은 6°C에 육박하고, 7월 오후에는 31°C까지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 강수량은 약 800mm이며, 11월에 가장 집중되어 12일 동안 120mm에 가까운 강설량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눈은 일반적으로 드물지만, 2012년 2월에는 이례적인 한파로 25cm의 눈이 내려 반도 전역의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매년 약 2,600시간 동안 일조량이 유지되는 이 지역은 "지중해의 꽃"과 같은 비공식적인 별명을 얻었으며, 열렬한 현지 팬들 사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현대적인 도로와 크루즈선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 오늘날의 스플리트 지역은 그리스 선원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또는 2세기에 정착민들은 아스팔라토스(Aspálathos)라는 교역소를 세웠는데, 이 이름은 아마도 달마티아 해안에서 자라는 가시투성이 토종 관목에서 유래했을 것입니다. 로마 통치 아래, 이 소박한 식민지는 제국의 가장 야심찬 건설 사업 중 하나로 발전했습니다. 서기 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이 곶을 은퇴 궁전으로 정했습니다. 오늘날 스플리트 역사 지구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단지는 거대한 석조 벽, 웅장한 기둥, 그리고 요새화된 구역 안에 배치된 개인 거주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기 650년경, 살로나의 주도가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의 침략에 함락되자 피난민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성벽의 견고한 보호막으로 피난했습니다. 이 고대 유적들은 비잔틴의 종주권 아래 운영되는 새로운 정착지의 핵심이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들은 자신만의 시민적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중세 후기와 고시대에 스플리트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상 강국과 크로아티아 왕조의 야망 사이에서 미묘한 중립을 유지했습니다. 14세기 말에는 베네치아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도시의 방어는 강화되었고, 항구는 오스만 제국의 확장에 맞서는 중요한 전초 기지로 부상했습니다.

베네치아는 1797년 나폴레옹 군대가 공화국을 해체하고 캄포포르미오 조약에 따라 달마티아를 합스부르크 왕가에 양도할 때까지 스플리트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했습니다. 10년 후, 스플리트는 잠시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일리리아 속주에 속하며 프랑스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나폴레옹 몰락 후 빈 회의를 통해 오스트리아의 지배가 회복되었고, 스플리트는 왕실의 달마티아 왕국에 편입되었습니다. 그 후 1세기 동안 철도와 증기선이 스플리트를 중부 유럽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했고, 조선, 섬유, 담배, 식품 가공과 같은 지역 산업은 제국의 후원 아래 번영했습니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는 스플리트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후에 유고슬라비아)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열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스플리트는 처음에는 이탈리아에 합병되었다가, 그 후 독일군에 점령되어 크로아티아 괴뢰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1944년 파르티잔 전사들이 도시를 해방했고, 전쟁 후 스플리트는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 공화국에 편입되었습니다. 계획 경제 체제 하에서 브로도스플리트를 비롯한 스플리트의 조선소들은 급속도로 확장되어 유조선, 벌크선, 페리, 군함 등 모든 종류의 선박을 생산했습니다. 1981년 스플리트의 1인당 GDP는 유고슬라비아 평균의 3분의 1 이상을 상회했습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체제로부터의 전환은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공장은 문을 닫거나 규모를 축소했고, 실업률은 급등했습니다. 브로도스플리트는 여전히 크로아티아 최대 조선소이자 350척 이상의 선박을 수출하는 곳이지만, 현재는 전성기보다 훨씬 적은 수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산업 침체를 상쇄하기 위해 지방 정부는 관광 인프라와 상업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했습니다. 2005년 7월 A1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스플리트는 자그레브와 유럽 대륙 고속도로망과 직접 연결되었고, 이는 상품, 방문객, 그리고 투자자 유입을 가속화했습니다. 1998년부터 이곳에서 개최된 크로아티아 보트 쇼는 동남유럽 전역의 해양 산업을 위한 핵심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스플리트의 인구는 약 160,577명이며, 그중 96.4%는 크로아티아계이고 77.5%는 로마 가톨릭 신자입니다. 수도권이 반도를 넘어 인근 카슈텔라와 트로기르까지 뻗어 있어 총 인구는 33만 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반도 자체는 여전히 작습니다. 좁은 길과 빽빽하게 늘어선 건물들은 도시의 규모를 감춰주는 친밀감을 자아냅니다.

구시가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안팎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북서쪽 문을 통해 보행자들은 그늘진 골목길과 작은 광장으로 이어집니다. 리바(Riva)로 알려진 주요 해안가는 궁전 구역의 남쪽 경계를 따라 뻗어 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야자수가 늘어선 이 거리는 오늘날 보행자 전용 산책로로만 사용됩니다. 1807년, 프랑스 원수 마르몽(Marmont)의 명령으로 옛 베네치아 성벽의 일부가 철거되어 넓은 테라스가 조성되었고, 현재는 카페와 저녁 콘서트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북동쪽에는 서쪽으로 확장하던 시기에 궁전 성벽 너머로 조성된 나로드니 광장(나로드니 트르그, 일명 피아차)이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이 광장은 로브린 광장(Lovrin Trg)과 오루지야 광장(Trg oružja)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정권과 기능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광장 주변 외관으로는 종과 시계가 있는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 치프리아누스 궁전과 캄비 궁전, 그리고 1861년부터 운영되어 온 모르푸르고 서점이 있습니다.

스플리트의 "마르얀 아래의 도시"로 추앙받는 마르얀 언덕은 울창한 도심과 대조되는 숲의 정경을 선사합니다.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은 도보나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며 작은 예배당이나 그늘진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반도 동쪽에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옛 영묘 자리에 있습니다. 내부에는 7세기에 세워진 제단이 있으며, 성 아나스타시아와 성 도미니우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도미니우스는 오늘날 이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150년경에 완공된 이 대성당의 우뚝 솟은 로마네스크 양식 종탑은 달마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전망대 중 하나입니다.

스플리트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820년에 설립된 고고학 박물관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라는 명성을 자랑합니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일리리아 유물과 그리스-헬레니즘 도자기부터 로마 유리 제품과 중세 화폐학까지 다양합니다. 인근 크로아티아 고고학 기념물 박물관에는 중세 초기의 위커 세공품, 점토 조각상, 라틴 금석(일부는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감)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고학 유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옛 파팔리치 궁전에 자리 잡은 이 시립 박물관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달마티아의 도시, 문화, 경제 발전 과정을 보여줍니다. 민속학 박물관은 18세기 복식부터 현대 공예 부흥까지 달마티아의 민속 전통을 탐구합니다. 그리페 요새 내에 있는 크로아티아 해양 박물관은 해양 유산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해군 무기, 선박 모형, 항해 장비 등이 전시되어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항해 업적을 보여줍니다. 마르얀에 있는 과학 박물관과 동물원은 자연사 전시와 동물 우리를 갖추고 있으며,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직접 설계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반 메슈트로비치 갤러리는 그의 그림, 가구 디자인, 기념비적인 조각상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009년부터 궁전 뒤편 옛 병원에 자리 잡은 미술관에서는 예술이 여전히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6세기에 걸친 소장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블라호 부코바츠, 이반 메슈트로비치를 비롯한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상설 전시 외에도 크로아티아 현대 작가들의 순회 전시가 이어집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카슈텔레트-크리크비네 예배당에서 메슈트로비치가 조각한 나무 패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스플리트와 달마티아에 대한 그의 헌신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스플리트의 문화적 정체성은 박물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문학적 뿌리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마르코 마룰리치에게까지 이릅니다. 그의 서사시와 도덕 논고는 초기 유럽 문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0세기에는 밀렌코 스모예와 같은 작가들이 TV 시리즈 '말로 미스토(Malo Misto)'와 '벨로 미스토(Velo Misto)'에서 도시의 변화를 기록하며 애정 어린 유머와 사회적 관찰을 접목했습니다. 또 다른 크로아티아 출신 배우 보리스 드보르닉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 속 인물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해가 지면서 스플리트는 더욱 활기찬 모습을 드러냅니다. 좁은 골목길에 음악 공연장과 바들이 펼쳐지고, 여름철에는 클라파(klapa)의 노래와 팝댄스 비트가 공중을 가득 채웁니다. 2013년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최초로 울트라 유럽(Ultra Europe)을 개최하여 매년 7월 폴류드 스타디움(Poljud Stadium)에 약 15만 명의 페스티벌 방문객을 불러모았고, 2019년 파르크 믈라데지(Park mladeži)로 이전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스플리트의 울트라 유럽은 40개국 이상에서 13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했습니다. 2023년에는 스플리트 최초의 LGBTQ+ 클럽이 문을 열면서 야간 활동이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방문객들은 야외 해변 바와 지하 댄스 플로어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해안가에서 밤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광은 이제 스플리트 경제의 초석을 이루고 있습니다. 2023년 스플리트는 965,405명의 관광객과 3,050,389박의 숙박을 기록하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문화 중심지이자 크루즈 허브로서의 매력을 반영하는 새로운 기록입니다. 매년 거의 백만 명의 방문객이 브라치, 솔타, 치오보, 흐바르, 비스로 가는 페리를 이용하며, 계절에 따라 안코나를 비롯한 이탈리아 항구로 연결되는 노선도 있습니다. 스플리트 항구는 연간 약 400만 명의 승객을 수용하며,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분주한 여객 터미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크루즈선은 연간 260회 이상 기항하며, 13만 명이 넘는 여행객을 스플리트에 내려줍니다.

스플리트의 육상 인프라는 해상 교통망과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A1 고속도로는 북쪽 자그레브 방향으로 차량을 수송하고, 아드리아 해 고속도로는 달마티아 해안 전체를 관통합니다. 언덕 지형으로 인해 트램 운행이 불편하지만, 시내 버스가 반도와 교외 지역 모두에 운행됩니다. 북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카슈텔라에 있는 스플리트 공항은 2024년 362만 명의 승객을 기록하며 크로아티아에서 항공 교통량 2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주요 기차역은 자그레브, 오시예크, 부다페스트, 비엔나,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노선과 카슈텔 스타리로 가는 교외 열차의 종착역입니다. 코필리차(Kopilica)의 작은 역에는 스플리트 프레드그라데(Split Predgrađe) 통근 열차가 정차합니다.

그리스에서 유래된 지 2천 년이 넘은 지금도 스플리트는 역사의 층층이 일상생활 속에 녹아든 곳입니다. 한때 산골 마을의 필수불가결한 동반자였던 당나귀와 달마시안 개가 축구 엠블럼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HNK 하이두크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팬클럽인 서포터 그룹 토르시다에 대한 지역 사회의 헌신을 기리는 것입니다. 변화의 폭풍, 지진, 전쟁 속에서도 이 도시는 바다를 향한 방향성과 반도의 입지에서 비롯된 회복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궁전의 고풍스러운 돌담 옆에서 잠시 멈춰 서거나 마르얀 숲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스플리트는 피난처와 재창조의 장소에서 연속성이 번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고대 크로아티아어(HRK)

통화

서기 305년(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으로)

설립

+385(크로아티아) + 21(스플릿)

호출 코드

160,577

인구

79.38km² (30.65제곱마일)

영역

크로아티아어

공식 언어

0~178m(0~584피트)

높이

여름 CET(UTC+1) / CEST(UTC+2)

시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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